“나는 브루니의 불쾌한 결론을 지지한다. “종합 유선방송망의 확산과 인터넷의 성장은 우리 세상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를 약속했다. 그 대신 그 덕분에 우리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이들의 문화 집단 거주지로 후퇴하는 속도와 철저함도 향상 됐다.”
- 지그문트 바우만, <레트로토피아>,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 신형철, <인생의 역사>
노키즈존 논란을 볼 때마다, 어릴적에 마주친 앙드레김 선생님이 떠오르곤 한다. 열두세 살 무렵, 민속박물관에 견학을 갔다가 그 맞은 편에 있는 어느 의상실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TV에서도 본 옷이 쇼윈도에 걸려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무척 추운날인데도 하염없이 서서 연신 바라봤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디지털 전환 및 민간 위탁 사업은 (...) 제1호 ‘수익형 민간투자 소프트웨어사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민영화 사업의 주관 부서는 교육부가 아니라 과기부입니다. 교육부가 관장하던 국가의 교육제도가 민간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십여 년이 지난 뒤, 그분을 섭외할 일이 있었다. 단지 이런 전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닦아세우는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하신지. 나름 추억을 떠올려보던 참이라 정정하셔서 다행이다 싶었고, 심심한 사과를 전한 기억이 있다. 그 까칠함도 어린이에게는 예외였다는 걸 새삼 떠올려보곤 한다.
영국 미술사학계의 거두이자 르네상스 미술의 권위자였으며, MI5에서 암호분석을 했으나 케임브리지 5인조로 소련의 이중간첩이었고, 귀족 출신이자 게이였던, 앤서니 블런트를 상념하며 퇴근하는 중. 그 역시 한 개인의 정체성은 역설과 모순으로 성립된다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게 안에 있던 누군가가 문을 열고 ‘추우니 들어오라’고 권했다. 앙드레 김이었다. 그가 실재하는 인간이라는 것에 굉장히 놀라서 멈칫하다가 매장에 걸린 옷을 구경했고, 당시로서는 드문 패팅으로 자수를 놓은 재킷들을 몰래 만져봤다. 그리고 겁을 먹고 인사를 한 뒤에 그곳을 얼른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