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오랜 시장의 격언은 19세기에 나왔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의 설명으로, 생산 관여자에게 발생한 소득이 잠재적인 수요로 치환한다는 의미다. 생산을 하는 즉시,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소비여력이 시장에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 사회로 따지면 새벽노동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적확한 사례다. 시작은 마켓컬리다. 2015년 채소 같은 신선상품 샛별배송으로 물꼬를 텄다. 퇴근이 늦어 장 볼 여력이 많지 않은 직장인을 겨냥했다. 유통기한이 짧아 재고관리가 어려운, 그렇지만 수요가 높은 신선상품을 전날 주문해 당일 아침 이용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AI·빅데이터 토대 수요 예측 ‘일은 사람이…’

핵심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재고관리다. AI가 고객 빅데이터를 활용해 구매 패턴을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주문 전 입고를 마쳤다. 고객이 오이를 구매하지 않아도 오이를 구매할 것으로 예측해 미리 창고에 가져다 뒀다는 의미다. 주문이 이뤄지면 이를 배송하는 방식이다. AI와 빅데이터 활용 사례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화려한 혁신의 이면에는 갈아넣는 노동이 존재했다. 2022년 마켓컬리 물류센터 작업을 앞두고 대기하던 배송기사가 사망했다. 마켓컬리는 과로사를 부인했지만, 그에 앞서 발생한 쿠팡의 잇단 과로사와 겹쳐 새벽배송의 그늘을 비췄다. 배송기사만이 아니다. 물류센터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본지 2020년 12월1일자 “[지령 7천호 기획-두 알바, 일회용 물류노동 실태 ②] 새벽 7시, 당신의 집 앞에 ‘일용직 새벽노동’이 배송됐습니다” 기사참조>

마켓컬리가 물꼬를 튼 새벽배송 시장은 곧장 레드오션이 됐다. 이미 과로사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쿠팡이 시장을 접수했다. 2014년 익일배송에 초점을 맞춘 로켓배송을 대구와 대전·울산에서 시작한 쿠팡은 2020년 로켓프레시를 내놓고 신선상품 배송에도 나섰다. 마켓컬리와 비교해 신선식품을 포함해 모든 상품을 취급하는 물류업체로 성장한 쿠팡은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과로사와 함께.

e커머스 약진에 대형매장도 ‘심야영업’ 재개

쿠팡의 물류시스템은 마켓컬리와는 다소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2014년 로켓배송 시범사업을 시작했던 쿠팡은 물류센터를 대형화하고 중간유통은 배제한 ‘생산자-물류센터-구매자’ 틀을 짰다. 대규모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재고관리 시스템도 물론 도입했지만, 그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거대한 물류센터다. 시범사업 초기부터 운용한 쿠팡의 칠곡물류센터는 연면적 33만제곱미터에 달한다. 지하 2층, 지상 10층 규모다. 수천 명이 근무한다. 쿠팡 과로사 사태를 본격적으로 의제화한 계기가 된 고 장덕준씨(2020년 10월 사망)가 이곳에서 일했다.

새벽배송을 매개로 한 쿠팡의 부상은 물류시장 전체를 바꿨다. 플랫폼 중심의 e커머스에 맞서 설 자리를 잃던 대형마트는 일부 구조조정을 겪고 있고, 일부는 이른바 ‘퀵커머스’를 도입했다. 1~2시간 내 배송을 경쟁력으로 삼은 퀵커머스 시장이 성장하면서 대형마트 심야영업도 재개됐다. 덩달아 마트노동자의 노동량 투입도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택배노조가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초심야배송(0시~5시) 제한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인프라와 거기에 기반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 붕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새벽배송 수요는 어디까지나 인위적 수요임을 강조한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본인의 SNS에 “쿠팡이 택배, 물류서비스에서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창출한 새벽배송은 소비자의 잠재적 니즈를 발굴했다기보다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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