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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갑자기 속이 안 좋았다. 가벼운 멀미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았던 속앓이는 급기야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악화됐다. 지금도 그랬다. 동기들이랑 칼국수를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 간 순간, 바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돌진했다. 애초에 먹은 것도 없어서 나오는 거라곤 위산과 침 뿐이었다. 퉤, 입 안에 남은 역한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야, 제노야 괜찮아?”
“... 미안한데, 나 먼저 집에 갈게..”
“그래.. 속이 많이 안 좋나 보다. 얼른 가서 쉬어.”
초췌한 몰골로 화장실에 나온 제노를 보고 동기들은 저마다 말을 얹었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둥, 어디 많이 아픈 거 아니냐는 둥, 잠 좀 잘 자라는 둥. 애정이 어린 잔소리를 듣는 와중에도 칼국수 냄새가 코를 강타하는 바람에 제노는 죽을 맛이었다. 비틀거리며 식당을 나온 제노가 칼국수 집 간판을 쳐다봤다. <맛나 칼국수>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제노의 단골집이었다.
“아.. 왜 이러는데 진짜..”
집에 돌아와서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그 냄새에 또 한 바탕 변기를 부여잡은 제노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 상태가 지속하면 며칠 내로 굶어 죽을 것 같았다. 와, 그건 진짜 끔찍한데.
“제노야! 제노야!”
“......”
멀쩡한 벨 놔두고 문 쾅쾅 두드리는 건 어디서 배운 예의지.. 제노가 밍기적 몸을 일으켰다. 누군지 안 봐도 비디오라서 확인도 안 했다. 역시나, 문을 여니 잔뜩 울상인 표정의 재민이 있었다.
“너 토했다며!”
“인준이가 그새 또 말했어?”
“지금 그게 중요해? 너 그 칼국수 제일 좋아하잖아. 근데 토하고 먹지도 못했다길래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그런 의미에서 잠깐실례.”
오늘따라 수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뒤에 합류하기로 했던 재민은 칼국숫집이 아닌 제노의 집에 집합했다. 그것도 양손 가득 무겁게 하고선. 말만 공손하지 무작정 밀고 들어온 재민은 곧바로 냉장고부터 점검했다. 냉장고 문이 열리는 순간, 제노가 바로 코를 틀어막았다.
“아휴, 냉장고 안이 이게 뭐야. 있는 게 없잖아. 계란이랑 김치만 먹고 살아? 야채랑 고기도 적당히 같이 먹어줘야 한다고. 한 번에 다 못 먹겠으면 소분해서 얼린 다음에 그때 그때 꺼내서...”
“재, 재민아.”
“응?”
“냉장고.. 냉장고 문 좀..”
“냉장고 문이 왜. 고장 났어? 한 번 봐줄까?”
“그게 아니라.. 우욱!”
분명 재민 말대로 냉장고 안에는 있는 게 없었다. 계란 열 알과 2L생수 두 병, 라떼 두캔, 예전에 먹다 남은 딸기잼과 케첩,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다. 근데 왜 이렇게 역한 냄새가 나지? 온갖 음식물 냄새에 냉장고 특유의 냄새까지 코를 찔렀다. 걱정끼치기 싫어서 최대한 꾹 참았음에도 한계에 도달한 제노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제노야! 재민이 식겁해서 뒤따라갔다.
“우윽... 하아...”
“제, 제노야.. 등 두드려 줄까? 진짜 어디 아픈 거야? 그래? 119 부를까...?”
“오버 하지 마.. 그 정도 아니야.. 욱!”
오버 하지 말라기엔 맨눈으로 보이는 상태가 꽤 심해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던 재민이 등이라도 쓸어주려 손을 대자, 열이 오르는지 몸이 후끈했다. 우리 제노 죽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재민이 울먹거렸다.
“제노야, 엉엉, 제발 병원 가자 엉엉. 이러다 제노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엉엉.”
힘든 건 이제논데 우는 건 나재민이 다 한다. 제노는 제 식은땀을 닦아주며 오열하는 재민을 물끄러미 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모르겠고 수액이라도 한 방 맞아야 기운이 날 것 같았다. 사실 이때까지도 제노는 자신이 체했거나, 아니면 장염 정도에 걸린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다.
“어.. 이건 저희 병원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근처에 있는 내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안경을 들어 올릴 때 쯤, 처음으로 공포심이 스멀 올라왔다. 제노가 이 정도니 재민은 거의 숨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왜, 왜요..? 많이 아픈 거예요? 우리 제노 진짜 죽을 병에라도 걸린, 컥.”
“자꾸 재수 없게 그런 말 하지 마!”
과하게 몰입하다 결국 제노에게 옆구리를 맞은 재민이 쭈그러졌다. 여전히 눈물 방울은 매단 채였다. 그게 아니라.. 거 참.. 의사선생님은 어찌 된 일인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 아무래도 산부인과에 가보시는 게...”
“......”
“...?”
어디요? 재민과 제노의 눈이 마주쳤다.
“축하합니다. 임신이세요.”
“.. 누가요?”
“이제노 환자분 아니세요?”
“마.. 맞는데.. 맞는데요..”
“임신하셨어요. 7주 차 접어드셨고요.”
제노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임신 사실을 듣자마자 그대로 기절했다. 후에 들어보니, 제가 죽은 줄 알고 놀란 재민이 엉엉 울면서도 의사 선생님이 해주는 말을 다 들었다고 한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하얀 천장이었다. 제노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병실임을 알았다. 데굴 눈동자를 굴리면 오른쪽 팔에 링거가 꽂혀 있다. 조용한 걸 보니 재민이 난리 블루스를 치면서 1인실을 잡은 모양이다. 미친, 돈 남아도냐고. 욕이 절로 튀어나왔지만 조용해서 좋긴 하다. 병원냄새에 마음이 편해지긴 처음이었다. 삶에 의욕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만 보던 제노는 문득, 기절하기 직전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임신하셨어요. 7주 차 접어드셨고요.
“... 흐어엉..”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이 뱃속에, 이제노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 누운 그대로 후드득 눈물을 흘리고 있자, 재민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다 울음소리를 듣고 바로 제노의 손을 잡는다.
“제노야! 왜 울어. 어디 아파? 어?”
“나재민 이 나쁜 놈아.. 너 때문이잖아..!!”
“어, 어?”
“7주 전이면 그날이잖아. 너 술 먹고 꼴아서 콘돔 안 한 날! 진짜 죽을래? 내가 콘돔 끼라고, 흑, 했잖아아..”
“아... 아아..”
그날은 재민도 톡톡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날 과제로 밤 새운 제노를 두고 혼자 동기들이랑 병나발을 불었던 날이었다. 만취한 와중에 제노가 보고 싶어 제 집을 두고 제노의 자취방에 찾아 가서는... 뽀뽀하다가 키스로 이어지고, 그러다가 섹스까지 했다. 그 과정에 콘돔은 없었다. 그때 딱 하루였는데... 노콘으로 딱 하루 한 건데 어떻게 바로.. 할 말은 많았지만 죄인 나재민은 입을 다물고 제노의 원망을 받아내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하나 더.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일까지.
“제노야.. 너무 울지 마. 기운 빠져..”
“흐윽...”
계속 훌쩍이던 제노가 겨우 울음을 삼켰다. 마카롱처럼 퉁퉁 부은 눈이 이 와중에도 귀엽게 느껴지면 큰 일이겠지. 제노는 입을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재민을 보다 한숨을 쉬었다.
“.. 미안.”
“뭐? 아냐, 제노가 뭐가 미안해.”
“너도 놀랐을 텐데.. 너무 내 화만 냈잖아. 그리고 그때... 솔직히 나도..”
부끄러워서 차마 ‘나도 좋긴 했다’고 끝까지 잇진 못했다. 하지만 재민은 대충 알아듣고는 머리카락을 쓸어줬다. 괜찮아. 우리 제노는 아무 잘못 없으니까 사과 안 해도 돼. 다정한 목소리가 기껏 참고 있던 눈물을 다시 나오게끔 한다.
“.. 우리 제노가 진짜 아기를 가지긴 했나보다. 그렇게 눈물 없던 애가 자꾸 울려 그러네.”
“몰라..”
재민의 장난에 그래도 웃음이 났다. 제노는 두 팔을 뻗어 재민의 목을 감싸 안았다. 나 안아죠. 흔히 들을 수 없는 애교였다. 곧장 신발을 벗어 던진 재민이 침대로 쏙 들어가 제노를 안아줬다.
“근데 내가 이렇게 같이 누워도 되나?”
“뭐 어때. 내가 죽을 병 걸린 환자도 아니고. 나도 이게 좋아.”
“제노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맞다. 근데 재민아, 1인실은 좀 사치 아니야? 비쌀 텐데.. 나 수액만 맞고 퇴원해도 돼.”
“무슨 소리야. 그냥 내일까지 여기서 푹 쉬어.”
“그래도..”
“나도 이것만큼은 양보 못해.”
평소 나재민은 이제노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양반이었지만, 한 번 맞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리 제노가 말해도 고집을 부렸다. 그런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일단 이 병실은 기필코 하루를 머물러야 만족해 할 것 같았다. 돈이 아깝긴 해도 제노는 재민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이렇게 챙겨주니 좋은 것도 있었다.
“.. 배 한 번 만져봐도 돼?”
팔베개를 한 채 제노의 눈가를 살살 쓸어주던 재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복 안으로 손을 넣어 아직은 판판한 배를 문질렀다. 여기 안에 진짜 우리 아기가 있어? 조금 신기한 듯 묻는 말에 제노도 어깨를 으쓱였다. 잘 모르겠어.
“이렇게 납작한데 어떻게 아기가 있지..”
“그 아기도 엄청 작을 걸? 선생님이 그러는데, 완두콩 크기만 하대.”
“우와.. 그렇게 작아?”
“응.”
“.. 배는 언제부터 나올까?”
“일반적으로 12주 차 정도 되면 나온다더라.”
“뭐야.. 언제 다 공부했어?”
“너 자는 사이에 의사 선생님 붙들고 물어봤지.”
말하는 동안에도 재민은 계속 제노의 배를 토닥여줬다. 따뜻한 손이 배를 감싸자 묘한 안정감이 생겼다. 입덧할 시기에는 손, 발 마사지도 잘 해줘야 된대. 찬음식이 냄새가 덜 난대. 소곤소곤, 저를 감싸 안은 채임신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 해주는 재민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확실한 건 재민이 옆에 있으면 그 무서움도 설렘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특정한 게 막 당긴다던데.”
“.. 음... 나는...”
방금까지 그렇게 자놓고 또 눈이 가물 감긴다. 재민은 잠결에도 대답하려 웅얼거리는 입술에 쪽쪽 뽀뽀했다. 아이잇, 나 대답 좀.. 하자아.. 자꾸 입술을 부딪혀 오는 탓에 말이 막힌 제노가 칭얼거렸다.
“나...”
“응.”
“.. 과일 먹고 싶다..”
“과일?”
“으응.. 복숭아...”
“복숭아..?”
복숭아를 끝으로 제노는 잠이 들었다. 품에 안겨 색색 자는 제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담은 재민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5월에 복숭아를 어디서 사냐...”
벌써 입덧 기간 동안 제노가 원하는 음식을 조달하기 쉽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뭐 어떡해. 구해야지. 우리 제노랑 아가가 먹고 싶다는데. 자는 얼굴에 쪽쪽 뽀뽀한 재민이 제노를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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