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씨, 이 망겜 다시는 안 한다.”


나는 침대 위로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화가 난 와중에도 바닥에 던지긴 무서워서 매트리스 위에 소심하게 던진 건 비밀이다.



GAME OVER



스마트폰 화면 속 글자가 나를 놀리듯이 반짝거렸다.

 

“어휴.”

 

<본격! 아이돌 연애 시뮬레이션>, 줄여서 <아연시>는 내가 퇴사 후 수백 번 플레이한 아이돌 미연시로.

 

그룹 육성과 멤버 공략이 합쳐진 독특한 방식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뭐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모든 엔딩을 클리어하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수백 번을 반복해서 플레이한 결과, 누적 플레이타임 1000시간을 찍었을 때쯤 나는 모든 엔딩을 다 확인할 수 있었다.

 

…딱 하나, 히든엔딩만 빼고.

 

아까부터 깐족거리는 [게임 오버] 글자 뒤에서 내 최애인 [양주연]이 훌쩍거렸다.

 

'윽…….'

 

아무리 그림이라지만 최애가 우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할 수만 있다면 옆에 가서 달래 주고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나는 또 ‘위드미(WithMe)’를 살리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양주연]을 몇 번을 울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깟 히든엔딩이 뭐라고.

 

‘대체 뭐가 문제지?’

 

히든엔딩의 조건은, 팬클럽 회원 수 5천만 명과 호감도 100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인데.

 

그룹 자체를 성공시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좋은 타이틀곡 받아 와서 적당히 홍보만 잘 돌리면 됐다.

 

워낙 현실 고증이 잘 된 게임이라, 대형 엔터사에서 마케터로 일했던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히든엔딩만큼은 달랐다. 무슨 수를 써도 [양주연]의 호감도는 도통 80을 넘어가지 못했다. 수백 번을 반복해서 플레이해도 도무지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둘이 싸웠나?’

 

휴대폰을 들어 아까부터 울고 있던 [양주연]의 얼굴을 잠시 감상하다가, 이내 화면을 꺼 버리고는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아, 답답해 죽겠네. 차라리 내가 게임 속에 들어가고 싶다.”


퇴사하고 나서 유일한 재미로 삼은 게임인데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으니까 기분이 꿀꿀했다.

 

클리어 공략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건 내 사전에 없는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게임을 오래 해서 그런지 머리가 띵했다. 멍한 감각과 함께 불시에 현타가 밀려들었다.

 

봄이 한창이고 꽃은 이미 한참 전부터 피었는데 내 인생은 반대로 지고 있는 것 같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데. 부모와는 절연하고, 외동이라 형제도 없는 나에게는 혼자라는 사실이 더 실감나는 계절일 뿐이다.


그 와중에 잘 다니던 회사까지 박차고 나와서 한다는 게 고작 이런 게임이라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아아.”

 

땅 꺼질 듯 깊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기어코 그 지옥 같던 회사를 다시금 떠올려 버리고 만다.

 

분명 나는 재능 있는 마케터였지만 그뿐이었다.

 

반짝이는 내 아이디어는 다른 PD의 이름에 흡수되어 크레딧에 올랐고, 스포트라이트는 전부 연예인들의 몫이 되었다.

 

그 거대한 업적 어디에서도 ’마케터 차현‘이라는 내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퇴사하는 당일까지 계속해서 들었던 폭언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머리통을 빠르게 흔들었다. 어차피 이미 관둔 회사, 이제 와서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이미 반쯤 잠에 취해 있었지만 억지로 눈을 뜨며 깨어 있었다. 이런 비참한 기분으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일어나서 갈 곳도 없는데 몇 시에 자든 무슨 상관일까.

 

나는 원래 고민하던 문제로 돌아가기로 했다. 현실 세계의 불쾌한 기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게임 속 세상의 문제 말이다.

 

[양주연]과 [홍다희]는 왜 서로를 피할까. 어떻게 하면 둘을 엮어줄 수 있을까…….

 

눈을 감은 채 공략법을 궁리하던 나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곳은 내 방 침대가 아니라 게임 속 세상이었다.

 

나는 <아연시> 속 세상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홍다희]가 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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