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교수 생활 1년차
"이게 교수로써의 삶인가" 싶은 순간들
아이고… 💀 이 글의 처음 절반은 올해 초에 교수 생활 1년차를 돌아보기 위해 써놓고 한참을 손을 못대다가, 어느덧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에서야 마무리를 짓게되네요.
시카고 대학에 온 이후 약 1년 3개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친듯이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잠깐 멈춰서서 되돌아보니 “이게 사람의 스케줄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시에 제가 이런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점에 있어서 뿌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MBTI 검사를 하면 항상 95% 이상 극내향인(…)으로 나오는데, 제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하루하루를 보낸 다는 것도 여전히 신기합니다.
그래서 한 번 지금까지의 교수 1년차 부터 2년차 첫 쿼터*까지의 생활을, 그 중에서도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숫자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언제나처럼, 제 스스로를 위해 기록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맞아, 교수 생활 첫 해에는 이랬었지”), 두 번째로는 혹시 교수직을 고려하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교수로써의 하루가 어떤지 엿볼 수 있는 용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글은 저만의 굉장히 주관적이고 매우 짧은 경험(1년 3개월)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시카고 대학은 쿼터제로써 가을(10-12월), 겨울(1-3월), 봄(4-6월), 여름 (7-9월)쿼터가 있습니다.
간단한 소개
우연히 제 블로그를 처음 방문하신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 드리자면, 저는 시카고 대학 (University of Chicago) 컴퓨터학과 조교수입니다. 이전 블로그에서 제 고려대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과정 지원을 준비하며”라는 글을 썼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 알려줄게요, 미국대학원”라는 책을 출판했으며, 이후 스탠퍼드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의 경험도 이전 블로그를 통해 조금 공유했었습니다. 현재 블로그(Substack)로는 2024년 8월에 옮겼고, 이제서야 잠시 멈춰서서 숨을 돌리고 첫 번째 글을 쓰게 되었네요.
수업에 드는 시간: 120%
Expectation: 학부생들에게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교수의 본업은 연구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저도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연구실에서 우연히 인턴을 하기 전까지 몰랐던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연구 중심 대학의 경우, 연구의 비중이 80%, 나머지 20%는 수업과 봉사라고 말하곤 합니다.
Reality: 그러나 아무래도 저는 처음으로 수업을 하는 처지다 보니 20%가 아니라 120%의 시간을 수업을 준비하는데 사용하고 연구와 봉사는 체력이 되는만큼 20-30%의 시간을 더해서 간신히 한 것 같습니다. 120%라니 무슨 말인가 하면, 학기 전부터 강의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학기 중에도 강의 하나 마다 약 10-20시간을 쏟아부으며 준비했습니다. 저는 2024-2025년도 컴퓨터과학 입문(Introduction to Computer Science)과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을 가르쳤습니다. 기존 있는 수업 자료를 바탕으로 준비했는데도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일주일에 수업이 두 세 번씩 있으니 이것만 준비하는데 이미 거의 40시간이지요. 그 외에 시험/숙제도 만들고, 채점도 하고, 조교들과 만나서 미팅도 하고 관리도 하고, 학생들과 오피스아워도 가지고, 인터넷 에 올라온 질문들도 대답하고… 일반적으로 일하는 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은 연구 관련 일(미팅, 논문 작성, 제안서 작성 등)을 하다보니,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보통 이른 아침 (새벽 5시부터 출근하기 전까지), 늦은 저녁 (퇴근 후 자기 전까지), 그리고 주말이었습니다.
위의 캘린더는 자연어처리를 가르쳤던 쿼터의 일주일 중에 하나인데, 이렇게 놓고 보니 정말 으악소리가 나네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정말 최소한으로 수업만 준비하자 했는데도 그마저도 마음에 들 정도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고, 숙제도 겨우겨우 조교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배포했으며, 학교 규칙과 행정처리에도 미숙해서 무슨 상황이 하나 있을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할 때도 많았습니다. 또 이때는 교수 채용 시즌이라 20-30명 남짓 교수직 지원자들의 잡톡, 1:1 인터뷰, 저녁 식사 등에도 참석해야 했는데,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지 못해 학과의 구성원으로써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꼈던 기억도 납니다. 제 학생을 멘토링하는데 충분히 시간을 쏟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었고요. 그나마 잠이라도 잠깐 자고, 정신차리고 수업을 하는데에 의의를 두었던 쿼터였습니다.
매주 만나는 사람: 3~30명 → 100~300명
Before: 교수로 있다보니 만나고 소통하는 사람의 수와 범위가 아주 증가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 처럼 95% 이상의 극내향형인 제게 박사과정 그리고 포스닥으로 있었던 시기의 일하는 스타일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 동안은 주로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사람들과만 대화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세미나와 그룹 미팅에 참석하다보니 직접적으로 일을 같이하고 길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수는 3명 정도, 그 외에 지나가며 만나는 사람의 수는 10-30명 정도 였다고 할까요?
After: 교수가 된 이후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제 학생들과 또 콜라보레이터 10명 정도의 사람들과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고, 또 수업을 통해 매주 45-60명 정도의 학생을 가르치며, 제 연구 분야 세미나 두 개에서 매주 40-50명 정도의 학생들을 만나며, 교수 회의에서 60명 정도의 교수들을 매주 한 시간씩 만나고, 5-10명 정도의 교수 커미티 미팅도 매주 한 시간, 한 쿼터에 2-10번 정도 여기 저기 초청받아서 가서 하는 세미나 강연(20명-100명 참석자) 등등을 합치다 보면 쉽게 100-300명 정도의 사람들만나는 주가 꽤 많습니다. 그 외에도 정기적이진 않지만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잡히는 미팅과 논문 심사 관련 일들, 제안서 작성, 교수직/포스닥/박사과정/연구실 인턴 지원자 인터뷰 등도 있고, 지난 쿼터에는 학교 전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AI 관련한 워크샵과 이벤트들이 다양해서 그것을 통해서도 추가적으로 200명 정도의 학자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렇다보니 가끔씩 잘 모르는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자리에 가게 될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몇 년 동안은 심리학, 언어학, 경영학과 같이 다른 전공에 있는 분들께 제 연구를 발표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처음 초청을 받았을 땐 걱정이 컸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는 가장 재미있게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을 했던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어떨때는 꽤나 공격적인 질문이나 발언에 머리가 멍해졌던 적도 있고요. 이후 “아, 내가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하고 이불킥을 했지만, 그런 경험들이 있기에 앞으로 제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거란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그런 불편한 자리에 도전하고 가보려 합니다.
부탁의 수: ∞개
예전부터 교수가 되면 거절을 잘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사실 이 정도 양의 부탁을 받는 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가을 쿼터 중에 특히나 더 다양한 부탁을 받게 되는 것 같아서 이를 예로 들겠습니다. 일단 특히 컴퓨터과학 입문은 5개의 세션이 있어 수백 명의 학생들이 듣다보니, 그들이 겪는 정말 다양한 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파서 숙제 제출을 늦게한 경우는 언급할 필요도 없이 흔한 케이스이고, 가족이 교통사고를 겪었거나 급하게 출산을 했다거나, 다리가 부러져서 수업에 오기가 어려운 경우 등등 한 쿼터에만 해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또 입문 수업의 경우 AI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데, AI를 사용해 숙제를 한 학생들이 대거로 검출되어서 그와 관련해서도 이메일이 빗발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가 겨울 쿼터에 가르치는 자연어처리 수업의 대기 목록에 있던 100명 이상의 학생으로부터 수강신청과 청강 관련 이메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는 학생의 부모가 직접 이메일한 케이스도 있었고요. 이미 수강신청을 성공한 학생들로부터도 미리 syllabus를 공유해 달라거나, 첫 주를 인터뷰 때문에 빠져야 하는데 괜찮겠냐 등 다양한 질문이 들어옵니다. 부탁이나 질문이 학생들로부터만 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학과 내에서도 이것이 학부생 뿐만이 아니라 대학원생도 들을 수 있도록 정원을 늘려달라거나, 또 컴퓨터학과 학생뿐만 아니라 데이터과학과 학생도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옵니다.
자… 그럼 이제 봉사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앞에서 교수가 해야하는 일의 20%는 수업과 봉사라고 했습니다. 봉사는 “Service work”이라고 불리는 부분인데, 이는 주로 교수/포스닥/박사과정 선발 커미티, 컴퓨터학과 대학원생/대학생 생활 커미티, 학위논문 커미티, 저널/컨퍼런스 논문 리뷰, 컨퍼런스/워크샵 주최, 패널 및 세미나 강연, 학부생 멘토링 등을 포함하는 일입니다. 연구와 수업에 추가적으로, 별도의 보상 없이 하는 일이지요.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무료로 하는 일이니까 “봉사”와 비슷한 셈입니다.
먼저 “커미티 (committee)”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일하는 그룹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박사과정 선발 커미티의 경우, 1000명 가까이 되는 박사과정 지원자들의 애플리케이션을 읽고, 인터뷰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고, 오퍼 레터와 장학금 결정을 내리고, Visit Day를 주최하는 등의 일을 합니다. 과 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 2-3개 정도의 커미티에 포함되어 매주 미팅을 하고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개의 커미티 일을 하고 있어도 계속해서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거절을 해야 한다고 주변 멘토 분들이 얘기 해주셔서 열심히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학위논문 커미티의 경우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박사과정 학위논문 커미티의 경우, 각 학생마다 3명 정도의 인원으로 커미티를 구성하고 이 학생의 자격 심사부터 학위논문을 PhD thesis proposal 그리고 defense를 통해 심사하는 역할을 맞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교수마다 10개 또는 그 이상의 학위논문 커미티에 속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이고요. 그래서 이런 커미티 부탁이 들어올 때마다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수락 또는 거절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각종 키노트/세미나/패널 초청, 교수직/포스닥/박사과정 지원 관련 질문 및 피드백(학과에서 특별히 우선시 해서 채용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는지, 데드라인이 지났는데 지금 지원해도 괜찮은지, 올 해 박사과정 학생 모집하는지, 선발 과정 타임라인이 어떻게 되는 지, 여러 학교에 합격했는데 어떻게 결정해야 할 지 등등), 진로 고민/학교 생활 상담,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의 자문(투자자, 정부 기관 등) 관련해서도 다양한 부탁/요청/질문을 받습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조금 더 빈도가 적은 종류의 부탁을 생각해보면 더 많이 적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제가 컴퓨터학과/데이터과학과 뿐만 아니라 다른 과에도 소속되어 있어서 그곳으로 부터 오는 부탁과 요청도 간간히 있고, 작년에는 자연어처리 분야의 세미나와 홈페이지를 맡아서 운영하고 관리해서 그것 관련 일들도 이것 저것 있었습니다…만 이미 부탁의 수가 ∞와 같이 느껴진다는 포인트는 전달드린 것 같아서 여기에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
마무리
참… 이러다보니 지난 1년 3개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맨날 입에 “힘들다”를 달고 살았는데,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왜 그런지 조금은 객관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교수 생활은 본인이 컨트롤하지 않으면 정말 일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고, 그만큼 잘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서 아무리 해도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항상 듭니다. 번아웃이 오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고 할까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나머지 80% 부분(연구, 학생, 펀딩 관련)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올해는 일도 열심히 했지만 여행도 열심히 했습니다. 교수직의 자유로운 시간 운용을 이용해서 인도/네팔 (2월), 베이 에어리어 (3월), 일본 (5월), 뉴멕시코 (5월 말/6월 초), 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 (9월), 아이스랜드 (9월), 한국 (9월), 라스베거스 (11월), 밀와키 (11월), 샌디에고/로스앤젤리스 (12월)을 다녀왔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회와 심포지엄, 친구들의 결혼식과 3년 동안 지연된 허니문 등이 겹치며 정말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게 되었네요. 특히 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100 km, 7일간의 등산(Tour du Mont Blanc)을 하며, 스스로의 새로운 한계를 도전했던 경험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일도 열심히, 여행도 열심히 하는 것이 예전에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이기는 했는데, 정작 전쟁 같은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이렇게 열심히만 사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너무 정신없다보니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데 소홀했고, 깊게 생각하는 시간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내년에는 바쁨에 끌려가기보다, 제게 맞는 속도와 방식, 그리고 방향성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저도, 두서 없는 글을 읽어주신 고마운 여러 분들도 화이팅! 🙂💪






너무 멋지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