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원고들이 모든 광역·시외버스 이용할 현실적 개연성 없어” 파기환송
국가 책임 면제도 모자라 버스회사 부담까지 없애준 대법원판결
휠체어 이용자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 전국에 7대뿐
대법원이 장애인 시외이동권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 책임을 면해준 것도 모자라 버스회사들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마련하라는 ‘적극적 조치’를 명한 2심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파기환송했다. 8년 만에 나온 대법원판결이 사실상 장애인 시외이동권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지난 2월 17일, 대법원은 김아무개 씨 등 3명이 대한민국과 서울시, 경기도, 금호고속, 명성운수를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소송에 대해 선고했다. 판결에서 대법원은 “2심 판결 중 원고 승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다.
과거 2심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하게 국가와 지자체에 책임은 묻지 않고 버스회사들(금호고속, 명성운수)에 대해서만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정부 책임은 없으며 버스회사에 휠체어 승강설비 마련하라는 2심 판결도 잘못됐다’는 파기환송을 결정함에 따라, 장애인 시외이동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2014년 3월,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소를 제기한 지 8년 만에 나왔다.
- 대법원 “원고들이 모든 광역·시외버스 이용할 현실적 개연성 없어” 파기환송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법원은 차별행위의 중지 및 차별시정을 위한 구제조치의 하나로 ‘적극적 조치’를 명할 수 있다. 버스회사들에 대한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는 이러한 법원의 적극적 조치 명령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재판부의 판결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대법원은 원고들의 거주지와 직장 소재지를 고려할 때 “원고들이 향후 피고(버스회사)가 운행하는 모든 노선의 버스에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금호고속·명성운수의 재정 상태를 언급하며 “운임과 버스 요금 인상을 통해 휠체어 탑승설비 비용을 마련하는 데에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매립형 리프트 마련을 위해 금호고속은 약 383억 원, 명성운수는 62억 460만 원이 들며, 노출형 리프트에 대해서는 금호고속 229억 원, 명성운수 36억 6120만 원이 든다.
대법원은 이러한 이익형량(서로 충돌하는 기본권의 법익을 비교·판단하여 결정하는 일)을 고려하지 않고서 즉시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도록 한 원심판결은 “법원의 적극적 조치 판결에 관한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법원은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내면서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 대상 노선은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하되, 그 노선 범위 내에서 피고의 재정 상태 등을 감안하여 휠체어 탑승설비를 단계적으로 설치해 나가도록” 하라는 판단을 남겼다.
나아가 대법원은 저상버스 미제공도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교통사업자가 교통약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정당한 편의시설을 규정한 ‘교통약자법 시행령 별표2’에 “승하차 편의를 위해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였을 뿐 저상버스 도입에 관한 규정은 없다”면서 “현행법상으로는 시외버스나 광역형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교통사업자에게 저상버스를 제공할 의무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가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에 관한 지도·감독을 소홀히 하는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열거한 차별행위 유형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이 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제공을 위한 기술적·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하나, 이러한 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 또한 명시된 차별행위 유형에 없기에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 “휠체어 이용자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 전국에 7대뿐” 장애계 분노
장애인단체는 잇따라 성명을 내고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대법원이 탑승설비 설치 대상노선을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제한한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정할 것을 포기한 판단”이라면서 “그동안 구제조치를 인용한 법원의 판결 중 이행 대상을 이처럼 제한한 판례는 없다. 그 이유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어느 곳에서나 실질적인 편익을 누려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의 책임을 부인한 판결에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연구소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장애인의 접근권과 이동권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면서 “대법원은 정작 장애차별을 시정해야 할 국가 책임은 부인하고 사인들 간의 분쟁으로만 장애차별문제를 치부했다”고 비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또한 “장애인은 법에 명시된 이동권조차 권리라고도 부르지 못하는가”라면서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는 2021년 기준 7대에 불과하여 기반 자체가 없어 이용하지 못하는데, 거꾸로 이용가능성을 기준으로 탑승설비를 설치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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