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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스름 사이로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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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작전중입니다.

오로라*Aurora* 2017. 2. 28. 16:34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이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저녁 장거리를 봐오는 길인 엠마는 보도블럭 위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점점 낮이 길어지는 것을 보며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던 그녀는 시선 끝에서 익숙한 인영을 발견하자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집에 가는 중이니?”

 

하하, . 엠마는.......장보고 오시는 길인가요?”

 

하늘의 붉음에 물들어 더 짙어진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청년은 그녀의 장바구니를 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몇 달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게 된 청년은 경계심 강한 편인 그녀에게도 넉살좋게 말을 붙이는 상냥한 아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는 것도 많고 친절해서 지난번 크림스튜에 대한 맛있는 레시피를 전수받게 된 이후로는 엠마도 그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살짝 피곤해 보이는 안색에 괜히 잡았다고 판단한 엠마는 서둘러 그를 배웅했다.

 

내가 괜히 잡았네, 어서 가서 저녁 먹고 쉬렴, 다음에 보자

 

, 좋은 저녁 되세요.”

 

순간 씁쓸한 얼굴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노을로 인한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엠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 엠마를 잠시 바라본 코드네임 707 EXTREME, 최 루시엘은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혀 안으로 굴려보다가 그의 집, 그가 임시로 머무는 장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놀렸다.

 

늘 변함없는 그의 집 문 앞에 도착한 그는 집을 나가기 전과 달라진 흔적에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뱉어냈다. 찰칵 소리를 내며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벽에 기대 그를 기다리고 있던 벤더우드였다. 슬그머니 눈을 뜬 그는 돌아온 루시엘을 향해 마법이 깨지는 주문을 날렸다.

 

여기서 마지막 임무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루시엘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저 그는 속으로나마 엠마에게 조금 전의 인사를 다시 했다.

 

다음이라는 게 있으면 또 봐요 엠마

 

노을이 짙어지고 있었다.

밤이 다가오는 시간. 어둠의 정보원이 움직일 시간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페라 홀은 현재 어느 뮤지컬의 20주년 상연을 맞이하여 밤을 낮으로 만들 정도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는 이 오페라 홀 중 신관에서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인원들 중 가장 신입인 에이미는 그야말로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상연 첫날이기에 VIP 손님이 많아 더더욱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됐다. 물품 보관소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혹시라도 VIP의 물건이 섞이지 않도록 신중히 번호표와 물건을 교환해 주고 있었다.

 

에이미, 에이미 저기 좀 봐봐

 

잠깐 숨돌리는 타이밍에 그녀의 동료 직원인 레이첼이 그녀를 쿡쿡 찔렀다. 귀중한 쉬는 시간을 방해받는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지금 호응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여러모로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적당히 응대했다.

 

? 또 어디 유명한 배우라도 왔니?”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도 일하는 중에 만나면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법이었다. 건성이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은 다시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예 그녀 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정말 유명하고 잘생긴 배우라도 온 모양이었다. 살짝 호기심이 생긴 에이미는 그녀의 시선이 떨어질 줄을 모르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주변 조명을 흡수하는 반짝이는 붉은 머리칼이었다.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자연스럽게 정돈한 남자는 검은 정장을 빼입고 있었다. 흰색 셔츠와 베스트, 검은 보타이까지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특히 운동을 하는 것인지 균형 잡힌 몸매가 정장과 어울려 본인을 더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그림처럼 걸린 미소 한 점이 화룡정점이어서 레이첼이 왜 그렇게 안달이 나있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잘생겼지?”

 

, 확실히.......”

 

그녀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첼은 한껏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근무 중이었고 저 멀리서 다시 그녀들의 일거리, 즉 손님들이 슬슬 몰려들고 있었다. 말 한마디라도 붙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남자는 그녀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의 선배인 비앙카의 평소의 2배 쯤 되 보이는 친절을 베풀고 있음에도 웃으면서 본인의 물건 만을 챙기려는 걸 보면 말이다. 미리 맡긴 물건이 있었던 모양인지 번호표를 비앙카에게 건네자 비앙카는 안쪽으로 들어가 번호표에 맡게 보관 중이던 물건을 꺼내왔다.

 

핸드백?”

 

아무래도 이미 피앙세가 있나보네

 

, 잘생기고 싱글인 남자들은 대체 언제 만나는 거니 다른 여자들은

상당히 고가의 붉은 핸드백을 보고 여자친구(혹은 부인)이 있음을 직감한 레이첼은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였다. 에이미는 그런 레이첼을 보고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리고는 본인들의 원래 업무로 돌아가기로 했다. 임자 있는 상대에게는 미련이 없는 레이첼이었기에 그녀는 곧바로 다시 몰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와 다르게 에이미는 잠시 자리에서 멈춰 서 있다가 그가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자 슬쩍 발걸음을 놀렸다.

 

그렇게 그녀와 그가 움직이는 방향에서 교차점이 생기는 순간 에이미는 혼잣말을 하듯 한마디를 그에게 남겼다.

 

“2vip용 휴게실 A룸이 고장난 상태에요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남자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본인이 가던 길을 마저 갈 뿐이었다. , 하며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마음을 풀어낸 에이미는 남자의 뒷모습을 흘끗 바라보다가 고개를 도리질 했다.

 

저건 신포도다, 저건 신포도야

 

에이미! 얼른 와!”

 

레이첼의 한소리에 그제야 붉은 포도에 대한 미련을 버린 에이미는 우르르 몰려드는 손님들과 제 2차전에 돌입했다.

 

 

신관의 2vip용 휴게실은 각각의 vip 고객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방음과 관리가 철저한 편이었다. 그 중에서 구관과 연결된 통로 쪽에 위치한 A룸은 피치 못할 고장으로 인해 오늘 하루는 문을 닫아 두고 있었다.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구관 쪽에서 신관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태프의 명찰이 언뜻 보이는 남자는 양손으로 버거워 보이는 드레스 뭉치와 소품 등을 들고 있었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은 오페라 준비 인원쯤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신관에 도달하자 흘끔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고장A룸 앞으로 가 문을 독특하게 두드렸다.

 

탁 타닥 탁

 

리듬처럼 노크소리가 울린 직후, A룸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고 남자는 그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다시 닫힌 A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침묵했다.

 

, 이 짓도 참 하기 싫을 때가 있어

스태프의 명찰을 대충 벗어버린 남자는 드레스 뭉치를 주인에게 던져 주었다. 드레스의 주인, 루시엘은 그런 벤더우드의 모습에 키득 거리며 휴게실 안에 미리 준비해둔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냐?!”

 

그럼 여사님이 대신 여장할래?”

 

아니

 

단칼에 나오는 대답에 루시엘은 피식피식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순간 상상을 한 것인지 한껏 메스껍다는 얼굴을 하던 벤더우드는 휴게실 안에 달린 고풍스러운 시계를 쳐다보았다. 공연 시작 30분 전.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오페라 관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언제 도착하는 것 같냐?”

 

, 이제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시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오페라에는 별로 관심 없나봐?”

 

과시용이겠지

 

코웃음 치며 대답하는 벤더우드의 말에 루시엘도 말없이 동의했다. 해킹한 주요인물의 집 CCTV에서 그는 오페라에서 한참 먼 곳에 있음에도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도착하면 오페라의 초반부는 확실히 놓친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그래도 슬슬 준비는 해야겠는데?”

 

벌써?”

 

벤더우드가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루시엘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의미 불명의 미소에 소름이 돋은 벤더우드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루시엘에게서 멀어졌다. 노트북을 닫은 루시엘은 목에 매고 있던 검은 보타이를 슬슬 풀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부드럽게 풀린 보타이를 빙글빙글 돌리던 루시엘은 벤더우드에게 윙크를 날렸다.

 

원래 여자의 변신은 시간이 걸리는 법이랍니다. 여사님

 

“.......난 루트나 한 번 더 확인하고 온다.”

 

그의 윙크를 받고 팔을 북북 문지르던 벤더우드는 벗어놨던 스태프 명찰을 다시 차고 A룸을 나섰다. 역시 여사님은 놀리는 재미가 있다며 킥킥 거리던 루시엘은 단추를 하나 둘 풀면서 드레스로 갈아입기 위해 옷을 집어 들었다. 그러다 풀린 셔츠 사이로 은제 십자가가 튀어나오자 그는 아주 잠시 동안 그것을 응시했다. 그가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유일하게 가져갈 수 있는 존재는 변함없는 은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로 수십 초 전만해도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고요하게 변해 있었다. 루시엘은 한 번 눈을 깜빡거리다가 십자가를 손 안에 꽉 잡았다.

 

오늘도 내가 하는 일이 죄 없고 선량한 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듣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신에게 변함없는 기도를 올리며 루시엘은 그렇게 바랐다.

 

 

 

루트를 확인하고 적당히 옷을 갈아입은 벤더우드는 손목에 찬 시계의 형태를 한 수신기를 확인했다. 타깃의 좌석에 미리 설치해 놓은 발신기가 타깃이 자리에 들어오면 신호를 보내게 되어 있었는데 2분 전부터 수신기가 신호를 받았다. 그런데 같이 일해야 할 놈이 아직까지 오지 않고 있었다. 보통 여성의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놈이 진짜 여자인 것도 아니지 않나. 사실 오페라가 끝나기 전에만 가면 되지만 그래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만 있자니 슬슬 좀이 쑤셔오고 있었다.

 

그렇게 손가락만 두드리고 있는지 몇 분이 지났을까. 저쪽 복도에서 또각또각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등까지 길게 내려오는 붉은 머리, 화장으로 인해 더욱 또렷해진 금안, 살짝 오만해 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해 보이는 붉은 입술.

전체적으로 몸을 가리는 구조인 붉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에 벤더우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매번 보면서도 적응 안되는 모습이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라, 사실 여장 좋아하지?”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여사님?”

 

완벽한 여장의 모습에 루시엘 본인의 평소 목소리가 어울려지니 그만큼 부조화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 필요한 건 이런 사담이 아니라 임무 수행이었으니 벤더우드는 간신히 구겨진 미간을 정리하고 루시엘에게 손을 뻗었다. 정말 하기 싫다는 눈빛으로 에스코트를 위해 손을 뻗는 벤더우드를 보며 붉은 머리의 레이디는 요염하게 손을 내려놓았다.

 

구관의 오페라 홀의 박스 석은 총 10개가 존재했다. 박스 석 내부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보통 VIP는 아예 박스 석 내의 모든 좌석 표를 사서 여유롭게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는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이미지를 위해 자신과 일행의 좌석만을 샀다. 오페라가 가장 잘 보이는 좌석을 샀음에도 오페라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남자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이미 스토리라든지 감동받을 만 한 포인트는 비서를 통해 전달 받은 상태여서 나중에 감상을 말할 준비는 완료되어 있었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며 턱을 괴고 있던 찰나, 뒤쪽에서 박스석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비어있던 좌석의 주인들이 이제야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자기보다도 느리다니 그들도 어지간히 오페라에는 관심이 없는 종자들이라,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는 오페라보다는 흥미로운 대상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비틀었다.

 

오호?’

 

오페라 공연 중이었기에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이었지만 분명 미녀였다. 언뜻 보이는 붉은 머리칼이라든지 붉은 드레스가 인상적이었다. 분명 빛 아래 서있으면 대단한 미녀이리라. 저 멀리서 얼굴도 안 보이는 여주인공보다야 이쪽이 더 눈에 띄었다. 파트너와 같이 온 것 같았지만 그는 파트너 있는 여성들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남자였다.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동안 여성은 그녀의 드레스에 맞춘 듯 한 붉은 핸드백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아직 오페라는 끝나지 않았다.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 지나 휴식시간이 돌아왔다. 잠깐 옆 박스석이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관심 밖이었던 남자는 막이 내리자마자 바로 여자에게 인사를 건네기 위해 옆 좌석을 바라봤다. 그러나 남자의 기대와 다르게 좌석은 텅 빈 채였다.

 

어디 갔지?”

 

아마 화장이라도 고치려고 화장실에 간 것일 거라 짐작한 그는 얼른 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페라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좌석은 채워지지 않았다.

 

 

화려한걸?”

 

오페라가 다 거기서 거기지

 

박스석 위의 스탠딩 석에서 그들을 마중 나올 차를 기다리던 벤더우드와 루시엘은 남는 시간을 서서 오페라를 구경 중이었다. 몇 시간이나 하는 오페라를 서서 볼 정도로 재력이 없는 인물들은 오늘 없었기에 스탠딩 석은 그들의 차지였다.

 

오늘은 해킹 툴이 설치 된 핸드백을 이용한 작전이었다. 그들의 옆 박스 석에 있던 주요인물의 자료를 해킹하는데 가볍게 성공한 그들은 이미 해석한 자료를 보스에게 넘겼다. 핸드백 또한 처리 완료한 상태. 혹시나 그들을 의심할 사람이 나올지라도, 해킹당한 이들이 찾는 사람은 눈에 띄던 붉은 긴 머리의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될 것이었다.

정장의 근사한 남성으로 돌아간 루시엘의 검은 안경이 오페라의 빛을 흡수하고 있었다.

 

너도 참 대단한 놈이야

 

이번에는 일반 청소부 복장으로 모자를 푹 눌러쓴 채였던 벤더우드가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루시엘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